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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

제품에 '그래핀'적용이라면 무조건 거르세요. 이건 레알입니다.

저는 회사 다니면서 이런저런 제품을 많이 접했습니다.

자랑은 아니고, 연구원입니다. 박봉 받고 일은 되게 많은데, 장점은 많은 것들을 접하고 검토한다는 겁니다.

 

회사 생활하면서 제일 아쉬웠던게,

비트코인 정말 일찍 알았는데 채굴 시도도 안해본게 제일 아쉽구요.

(그때 삼성전자 되게 쌀때 못산 것도 후회하는데... 코로나 사태때 더 싸졌더라구요. 지금은 돈이 없어 못샀습니다.ㅋ)

 

암튼...

연구원으로서 검토한 물질들도 많아요. 전자회사 다녔고, 금속회사 다녔지만,

최종 제품으로 제작하려면 화학물질도 많이 검토하고, 접착제, 시트, 금속재질, 실리콘 이런 것들도 많이 다루게 됩니다. (쯧... 이 얘긴 씁쓸하긴 하다.)

 

여기서 하려는 얘기는...

네, 그래핀입니다.

비교적 최근에 발견된 물질(이라기보다는 탄소의 한 형태)이죠. 발견자는 노벨상도 받았습니다.

뭐 자세한건 찾아보시면 돼요. 굳이 제가 그래핀이 어떤거고 누가 상받았고 이런거 나열하진 않겠습니다.

 

 

그래핀이 특성이 참 대단히 좋습니다. 전기가 굉장히 잘 통하고, 강하며, 아주 얇습니다. 내마모성도 좋고...암튼 슈퍼슈퍼슈퍼하이 퍼포먼스 물질입니다. 이건 우리 주위에도 흔해요. 흑연이죠. 연필심, 샤프심 말이죠.

근데 왜 이런 좋은 물질을 잘 몰랐느냐... 이게 아까 말한 특성을 갖추려면 판형으로 존재를 해야 하거든요. 흑연의 아주 얇은 판 하나로 존재해야 그게 그래핀입니다. 그게 뭉쳐져있으면 그라파이트이고, 더 큰 단위로 그냥 흑연으로 부르는거죠. 연필심은 잘 아실겁니다. 무르고, 전기는 통하나? 안통하나? 아리까리하고, 단지 좀 매끄럽다... 즉 마찰력이 약하다 정도가 특성이죠. 그라파이트가 생각보다 많이 쓰이는데, 그런 특성을 이용한 것들이 찾아보면 꽤 많습니다. (자동차 와이퍼에 그라파이트 코팅을 해놓은 것도 볼 수 있죠.)

 

암튼, 그래핀... 그래핀 얘기를 해야죠. 그래핀은 아까도 얘기했던 것처럼 판형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그 특성이 매우 떨어집니다. 그냥 연필심을 갈아놓은 것과 다르지 않아요. 제가 방열판을 개발하면서 그래핀을 검토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의뢰한 업체에서 자신만만하게 그래핀이 적용된 시제품을 만들어서 보내준 적이 있죠. 자재비가 꽤 비싸지만 일단 시험부터 해보자고, 그리고 일본 제조사에서도 같은 아이디어의 제품을 (이건 시판 제품입니다.) 제공받아 자체 테스트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전혀 좋은 특성이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이유는 역시나, 소재 자체의 수치적인 특성은 뛰어나지만 활용했을때 특성은 매우 심하게 떨어집니다. 그냥 연필 칠해놓은 것과 큰 차이가 없어요. 실제로 그렇게 실험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라파이트 떡(!)을 두께를 달리해서 실험하기도 했고, 연필 칠도 이것저것 바꿔보기도 하고, 그래핀 원료를 얻어와서 다양한 방법으로 붙여보기도 했죠. 결론은 소용 없음입니다.

 

그래핀을 이용한 제품들이 이것저것 나오죠. 얼마전 수지가 광고하는 K2 플라이 하이크 등산화도 있었고... 어디에도 그래핀을 썼다, 그래핀을 어디 적용했다...이런 것들 많이 나오죠. 실제 제품으로 나온 것들 많이 접해봤습니다. 대부분이 그냥 그라파이트 가루를 혼합한 형태로, 아까 말씀드린대로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그저 마찰을 줄여주는 정도의 도움은 줄 수 있습니다. 방열판 표면에 적용하면 약간의 방열효과를 높여줄 수는 있지만 그라파이트 그 자체의 상태여야되고 금방 없어져버리죠. 잘 안붙어버리니까...

 

배터리나 기타 전자장치에 그래핀을 적용한 제품은? 거의 랩 레벨... 연구소 레벨의 실험 정도입니다. 양산은 어림도 없죠. 그래핀을 양산용으로 쓸 수 있게 되면 정말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은 현저히 낮습니다. 탄소를 얇은 한 판으로 꽤 크게 만들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비슷한 형태의 소금 결정 한 판을 손바닥만하게 만드는 것과 같은 수준의 난이도입니다. 현재 그래핀 제품이라고 나오는 것들도 대부분 가루형태여서, 이 가루를 얇게 편다고 해서 그래핀 본연의 특성이 나오질 않아요. 그래핀 하나 하나가 딱딱 붙질 않으니까.

 

암튼, 그래핀으로 현재 양산형 제품을 만드는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래핀에 대한 환상을 좀 버렸으면 좋겠다 싶어서 쓰는 글이거든요 이게...

 

지금 탄소섬유를 공부하고 있는데, 이 관련해서도 쉽게 주저리주저리 한번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탄소가... 만능이 아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