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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사

[미스터리] 일본제국은행 사건 (1948)

1948년 1월 26일, 일본제국은행의 한 지점에 중년남자가 들어왔다. 검은 코트를 입고 팔에는 도켜 방역반의 마크가 있는 완장을 차고, 작은 군영 가방을 들고 있었다. '후생성 의학박사 야마구치 지로'라는 명함을 내민 그는 은행장에게 "근처에 있는 우물이 이질의 감염원으로 밝혀져 은행원과 은행에 방역조치를 하러 왔다"고 했다.


그는 16명의 은행원에게 두가지 약을 복용시켰다. 은행원들이 먹은 것은 극약이었다. 10명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2명은 병원에서 사망, 생존한 사람은 4명이었다.


범인은 태연히 수표와 현금을 가지고 도주했다. 


다음날 범인은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어 갔다. 수표 뒤에 적은 가짜 이름과 주소로 범인의 필적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야마구치 지로라는 인물은 가공의 인물이었다. 명함 인쇄소 사람은 그 명함을 의뢰한 사람은 은행 강도와 인상이 같다고 증언했다.


히라사와라는 화가가 용의자로 검거되었다. 그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돈에 쪼들렸는데 집을 새로 짓고 있었다. 11명의 목격자가 충분한 시간을 갖고 히라사와를 관찰했다. 그러나 그를 범인으로 지적한 사람은 단 한명뿐이었다. 경찰은 그가 자백했다고 발표했으나 나중에 그는 강요받은 자백이었다고 번복했다. 


1950년 7월 히라사와는 교수형 판결을 받았다. 그는 '잘못된 재판'이라고 주장했다.

1955년 봄,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그의 신병이 법무성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히라사와는 처형되지 않았다. 1987년 사망할 때까지 교도소에서 보낸 것이다. 사건 당시 경찰은 범인을 과거 731세균부대의 부대원으로 보고 수사하려고 했지만 미군이 그것을 방해했다. 미군은 731부대의 실험 자료를 입수하고도 소련에는 이 자료의 존재를 알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럴듯한 용의자를 찾아 범인을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 희생자가 히라사와는 아닐까?